[스토리보드] 한 예술가의 기억 '니케·딸 그리고 100년'
'승리의 여신: 니케'와 컬래버레이션을 진행한 '스텔라 블레이드'에 '당신의 기억이 이어지기를'이란 대사가 있다. 아포칼립스 세계관에서 쓰러진 동료와 친구에게 건네는 말로, 너를 잊지 않겠다는 뜻이 담겼다. 이번 컬래버레이션 스토리 'MEMORIES TELLER'는 이 대사를 기반으로 만들어졌다 해도 과언이 아니다.
MEMORIES TELLER에는 임팩트 있는 캐릭터가 많았다. 사람보다 더 사람같은 로봇 '롬'과 '콤', 지상에서 홀로 살아남은 인간 '헤르민'이 대표적이다. 오늘은 100년의 세월을 홀로 이겨내고, 승리의 여신: 니케 세계관 인류의 예술을 보존한 위대한 예술가 헤르민이 이어간 기억을 보고자 한다.
랩쳐에 맞서 무기를 든 예술가들
지상에 '예술가들의 도시'라 불리던 곳이 있었다. 온갖 예술가들이 자유롭게 결과물을 만들고, 서로 혹은 사람들에게 공개하며 살아가는 관광도시였다. 자연스럽게 인지도가 올라가면서, 예술을 사랑하는 사람들의 성지로 불렸다.
그러나 랩쳐의 침공으로 모든 것이 바뀌었다. 군인이 아닌 대부분의 예술가는 뿔뿔이 흩어졌다. 개중 소수의 인원은 '예술을 보존해 후대에 전해야 한다'라는 사명감으로 랩쳐에 맞서 싸웠다. 이런 예술가 가운데 건축가 헤르민이 있었다. 헤르민은 자신의 능력을 발휘해 '100년은 버틸' 벙커를 제작했다. 이후 옮길 수 있는 모든 실물 예술품과 관련 데이터를 백업해 옮겼다. 랩쳐와의 싸움은 끊임없이 발생했고, 이 과정에서 부상을 입은 헤르민은 팔을 잃어 의수로 대체했다.
싸울줄 모르는 예술가들이 도시를 지키며 싸운다는 소식은 사방으로 퍼져나갔다. 이에 감명 받은 소수 니케들이 합류해 싸움을 이어갔다. 중앙 정부의 전신 '인류연합군'은 이 도시를 프로파간다로 사용했다. '무기를 든 예술가들'이라며 사기를 끌어 올리는 용도로 활용했으며, 지원을 아끼지 않았다. 하지만, 프로파간다로 사기를 끌어 올려도, 끊임없이 몰려오는 랩쳐들을 막을 순 없었다. 결국 인류를 패배했고, 자연스럽게 도시를 위한 지원도 끊어졌다.
상황이 어려워지자 이들을 구하러 오겠다는 말은 했다. 문제는 그게 새빨간 거짓말인 점이었다. 군인도 아닌 그저 예술 분야에 전념하던 일반인들을 치켜세우며 선전 도구로 실컷 써먹어 놓고, 이들을 랩쳐 한가운데에 버리고 도망쳤다. 토사구팽, 사냥이 끝난 사냥개는 먹힌다는 추악한 결말이었다.
헤르민을 비롯한 예술가들은 벙커로 몸을 숨겼다. 이때 헤르민의 나이는 40대였다. 절망적이지만, 그들은 희망을 버리지 않았다. 인류연합군과 연락이 끊긴 건 일시적으로 생긴 일이라고 받아들였다. '언젠가 우리를 구하러 와줄 것이다.', '인류연합군이 우리를 버릴 리가 없다.', '이 예술만은 어떻게든 지켜내야 한다'라는 말만 되뇌었다.
그러나 돌아온 건 아무것도 없었다. 헤르민과 함께 예술을 지키기로 마음먹었던 사람들은 점점 희망을 잃어갔다. 그 중엔 벙커에서 버티지 못하고 밖으로 뛰쳐나간 사람들도 있었다. 헤르민은 그럼에도 희망을 놓지 않았다. 추위에 몸이 떨려와도 목조상 같은 예술품을 태우는 것만은 절대로 안 된다는 뜻을 고수했다. 그러던 어느 날, 벙커문을 두드리는 소리가 들려왔다. 마침내 인류연합군이 우리를 구하러 온 것이란 생각에 웃으며 문을 열었다. 하지만, 문 앞에 있던 건 기다리던 구원이 아닌 밖으로 도망갔던 사람 중 한 명이었다.
그저 딸이 행복하길 바란 예술가
헤르민은 돌아온 사람을 질책했다. 도망갈 땐 언제고, 무슨 낯짝으로 돌아왔냐고 말이다. 그러나 이내 같이 도망간 사람들이 모두 사망했다는 소식에 말을 잊지 못했다. 아울러 돌아온 사람이 임신했다는 충격적인 사실을 알게 됐다. 누구의 아이일까? 어쩌다 그렇게 된 걸까? 헤르민의 고민은 오래가지 못했다. 출산이 임박해 결국 아이를 받아야 하는 상황이 발생했기 때문이다.
이론으로만 알 뿐, 산파 경험이 없는 헤르민과 벙커의 사람들은 고생 끝에 아이의 탄생을 목격했다. 대신, 산모는 힘을 모두 써 생을 달리하고 말았다. 이때 헤르민은 실물 예술품 보존을 포기했다. 태어난 아이를 살리기 위해 목조상을 태워 물을 끓였고, 천 예술품을 잘라 포대기와 이불을 만들었다. 아이를 위한 음식은 다행히 산모가 벙커로 돌아오는 길에 잔뜩 가져왔다. 벙커의 사람들은 이런 세상에 태어난 아이를 위해 아버지, 어머니가 되기로 다짐했다.
예술가들의 '딸'은 무럭무럭 자라났다. 어린아이들이 그러하듯, 자연스럽게 벙커 밖 세상에 관심을 가지기 시작했다. 물론, 밖은 랩쳐로 가득해 못 나간다는 말에 딸은 시무룩해질 수밖에 없었다. 세월이 흘러 헤르민이 중년이 됐을 때, 다시 누군가 벙커의 문을 두드렸다. 더 이상 인류연합군은, 방주는 우리를 구하러 오지 않는다는 생각에 헤르민은 조심스럽게 상대방이 누군지 확인했다. 놀랍게도 그들은 니케였다. 사라진 희망이 다시 피어났다고 생각한 헤르민은 그들을 반갑게 맞이했다.
그러나 세상은 헤르민이 행복한 꼴을 보기 싫었나 보다. 니케들은 한 전투 보조 로봇과 함께였고, 방주의 말도 안 되는 명령에 항의해 탈출한 것이었다 승리의 여신이라 불리던 니케들의 취급에 아연실색한 헤르민은 니케들에게 마음껏 머물라는 선의를 베풀었다. 동행한 전투 보조 로봇 콤은 이내 딸과 둘도 없는 친구가 되었다. 니케들 덕분에 짧은 시간이지만, 벙커 밖을 구경시켜 주기도 했다. 풀이 죽었던 딸이 다시 활기차게 변하자 헤르민은 콤에게 감사를 표했다.
그렇게 얼마나 시간이 흘렀을까, 콤은 헤르민에게 '아이는 좋은 환경에서 자라야 한다'는 건의를 했다. 헤르민은 고민 끝에 콤에게 방주로 돌아갈 수 있는지를 물었다. 콤은 로드급 랩쳐만 만나지 않으면, 시간이 걸리나 방주로 돌아갈 수 있다고 밝혔다. 결심을 굳힌 헤르민은 콤과 니케들에게 딸을 방주로 데려가달라는 부탁을 했다. 딸을 데려가면, 탈주가 아닌 지상의 인류를 보호했다는 구실로 그들이 처벌을 받지 않을 것이란 이유도 포함됐다.
아빠와 헤어져야 한다는 사실에 딸은 울음을 터트리며 거절했다. 하지만, 부모는 결코 자식이 불행한 걸 바라지 않는다. 딸을 다독이며 부탁할 때 사건이 터지고 말았다. 난데없이 배수로가 막혀 벙커 밖에 물이 차오르기 시작한 것이다. 벙커가 물에 잠기면, 지금까지 지켜온 예술 데이터가 모두 사라질 위기였다.
헤르민은 이를 막기 위해 자신이 홀로 남을 테니, 밖에서 문을 용접해달라는 부탁을 했다. 니케들과 사람들은 죽고 싶냐고 물었을 것이다. 헤르민은 '이 예술 자료들은 내 목숨보다 소중하다'라며 뜻을 굽히지 않았다. 본래 딸만 데리고 가려던 계획은 헤르민을 제외한 모든 인원이 탈출하는 것으로 바뀌었다.
헤르민은 탈출하는 사람들과 콤에게 딸을 맡기며 '자신을 꼭 구하러 와달라'고 부탁했다. 이내 벙커의 문은 닫혔고, 용접이 시작됐다. 용접을 하기로 한 3명의 니케는 헤르민의 숭고한 의지를 헛되이하지 않으려는 듯, 자신의 팔까지 잘라가며 진행했다. 이내 벙커 밖은 삽시간에 물에 잠겼다. 니케 3명은 차오른 물 속에서 숨을 거뒀고, 헤르민은 홀로 벙커에 남겨졌다.
그렇게 세월은 하염없이 흘러갔다. 콤이 남겨준 수명 연장제 '이터널 라이프'는 모두 떨어졌다. 투여를 멈추자 노화가 진행됐다. 헤르민은 매일 벙커에 남았던 사람들의 사진과 액자만 하염없이 어루만지며, 하루하루 외로움에 지쳐갔다. 모든 것을 포기하고 싶었다. 스스로 목숨을 끊는 것도 생각했다. 그럴 때마다 헤르민의 눈엔 아름다운 그림이 들어왔다. 자신이 무엇을 위해 살아왔는지 다시 상기하며, 그렇게 시간은 하염없이 흘러갔다.
100년의 세월 끝에 찾아온 구원
헤르민이 140세에 접어들었을 무렵, 벙커에 들어온 지 100년이 된 시점 용접된 문이 열렸다. 밖에는 니케들과 지휘관, 특이한 옷차림의 일행이 보였다. 한눈에 방주 사람이라는 걸 깨달은 헤르민은 기쁨인지, 원망인지 모를 기분에 사로잡혔다. 의료 보조 휠체어에서 심장 박동 경고를 보낼 정도였다.
지휘관과 카운터스, 이브 일행에게 헤르민은 자신의 과거를 모두 이야기했다. 일행들은 침통한 마음에 그 어떤 위로도 할 수 없었다. 이때 헤르민의 생존을 보고한 프리바티는 말도 안 되는 명령을 수신한다. '지상에 남은 인류는 0명이어야 한다' 돌려 말했지만, 헤르민을 처리하라는 명령이다. 물론, 지휘관과 카운터스, 이브 일행은 결사반대했다. 자신들의 기득권을 위해 이런 구역질 나는 명령을 내린 방주 상층부에 혐오감이 쌓이는 건 덤이다. 당연하지만, 프리바티는 이 명령을 들을 생각이 하나도 없었다.
프리바티는 자신이 책임지고 보호할 테니 방주에 가자는 제안을 했다. 헤르민은 자신은 방주를 믿을 수 없다고 되받아쳤다. 오히려 고향과 같은 이곳에서 생을 마감할 수 있게 해달라는 입장을 전했다. 자신들을 100년간 구하러 오지 않은 방주의 신뢰도가 바닥일 테니 당연했다.
다만, 모든 예술 데이터를 방주로 함께 가져가겠다는 말에 헤르민은 마음을 바꿨다. 자신들이 지켜온 것이 이어질 수 있다는 생각이 크게 와닿은 것이다. 일레그를 통해 자신이 설계한 지붕 양식이 방주에 남아 있다는 걸 들었을 때부터, 사실 마음은 이미 기울지 않았겠느냐는 생각이 든다.
일행의 도움으로 데이터를 백업하는 와중, 아담과 짧은 대화를 나눈다. '어째서 계속 견딜 수 있었냐?'라는 말에 헤르민을 잠깐의 고민 끝에 답했다. 이렇게나 오래 기다렸는데, 이뤄지는 것을 못 보고 떠나면 너무 억울할 것 같더라고 말이다. 그걸 직접 눈에 담는다면 '그것이야말로 진짜 예술이 아니겠냐?'는 답에 아담은 위로가 됐다는 묘한 감사를 표했다. 아담이 이런 이유는 스텔라 블레이드 본편에서 확인하자.
헤르민의 건강 상태는 점점 안 좋아지고 있었기에 데이터 수복 작업에 박차를 가했다. 그런데 세상의 억까는 아직 끝나지 않았다. 100년을 버틸 목적으로 만든 벙커의 벽이 뚫려버린 것이다. 헤르민이 자신한 대로 100년을 버틴 끝에 붕괴가 시작했다. 기겁한 일행들은 겨우 수몰되기 전 데이터 백업에 성공했다. 헤르민은 안타까운 시선으로 물에 잠긴 벙커를 바라보았다. 어떤 이유인지 눈치챈 이브는 물에 잠긴 벙커에 다시 들어가 헤르민이 그렇게 아끼던 사진과 액자를 건져 왔다.
고향으로 여겼던 벙커를 뒤로하고, 헤르민은 테트라 포드에 몸을 실었다. 이브 일행이 랩쳐를 상대하는 사이 헤르민과 일행들은 먼저 방주로 들어왔다. 갑자기 나타난 헤르민을 본 높은 양반들은 역정을 냈다. 다행히 그간 쌓아온 권력과 지위를 이용한 지휘관과 프리바티의 선언으로 일축됐지만 말이다. 그렇게 헤르민은 100년만에 방주로 들어왔다.
아름답게 이어진 예술가의 기억
헤르민이 100년간 지켜온 데이터는 방주에 전달됐다. 막대한 양의 자료는 방주 곳곳으로 퍼져나갔고, 이를 주제로 강연, 공연, 전시 등의 활동이 활발하게 일어났다. 방주 전체가 과거의 예술에 관한 이야기로 가득 찼다. 헤르민의 신분과 사정을 노출하지 않는다는 조건으로, 프리바티의 항명은 면책됐다. 끝까지 자신들의 치부를 드러내기 싫어하는 방주 상층부가 역겨울 따름이다.
보통 사람이라면, 자신이 일궈낸 업적을 자랑하고 싶은 마음이 들 것이다. 무려 100년이다. 100년간 홀로 과거의 유산을, 인류의 보물을 지켜낸 것이다. 그럼에도 헤르민은 '자신은 그저 지킨 사람일 뿐'이라며, 이걸 수행해 낸 것만으로 여한이 없다고 했다.
사실 헤르민이 방주에 도착한 시점에 의료진은 지금까지 살아있는 게 기적이라고 답했다. 너무 노쇠한 상태라 손을 쓸 수 없는 상태였다고 한다. 프리바티는 헤르민을 직접 데리고 다니며, 방주를 보여줬다. 예술가들이 남긴 흔적이 방주에 남아있는 것을 본 헤르민은 그저 기뻐했다. 하지만, 끝내 세상은 헤르민에게 그 이상의 시간을 주지 않았다. 헤르민은 도착한 지 일주일이 된 날, 소중한 액자를 끌어안은 채 위의 유언을 남기고 영면에 들었다. 사후 헤르민의 위령비가 방주에 세워졌다. 자신만의 복수를 끝낸 콤이 찾아온 건 그로부터 며칠 뒤였다.
다시 시간이 지나 지휘관과 프리바티, 콤은 방주 AI 에닉에게 한 전시회의 초대장을 받았다. 얼떨결에 방문한 전시회에서 그들만이 아는 벙커 내부가 그려진 그림을 발견한다. 작품의 이름은 '집'이었다. 이때 당황스러워하는 일행에게 말을 건네는 양산형 니케가 나타났다. 바로 헤르민과 벙커의 예술가들이 함께 키웠던 딸이었다.
콤과 함께 방주로 향했으나 로드급 랩쳐와 만나 콤과 딸을 제외한 모든 인원이 사망했다. 딸은 심한 상처를 입었고, 방주는 딸을 니케로 만들었다. 양산형이 된 딸에게 콤은 '아트'라는 이름을 지어줬으나, 과거의 기억이 모두 사라진 상태였다. 이에 콤은 분노해 방주에 복수할 계획을 세웠다. 콤에 관련된 이야기를 모두 다루기엔 아쉽게도 여백이 너무 부족하다. 컬래버레이션 스토리를 정독하길 추천한다.
다시 돌아와 일행에게 말을 건 아트는 헤르민이 가지고 온 예술 작품을 보고 홀린 듯이 그림을 그렸다고 한다. 콤은 어째서 제목이 집인지를 물었다. 아트는 눈을 감으면 아른거리는 장소라 답하며, 기억을 되짚어갔다. 자기를 바라보던 따뜻한 눈빛들, 이상하리만치 화려했던 이불, 차갑지만, 따뜻했던 상자 위의 풍경을 말이다. 그리고 말을 이어가던 아트는 문득 기시감에 휩싸인다. 눈앞의 로봇이 매우 익숙해 보여서다.
콤은 마치 사람처럼 떨리는 음성으로 물었다. '아트, 나를 기억하나?'. 아트의 시선이 그림과 콤을 몇 번이고 오갔다. 그리고 마침내 어린 시절 자신과 놀아줬던 바로 그 콤이란 사실을 기억해 낸다. 뒤이어 자신을 기억하냐는 아트의 말에 콤은 울먹이며 대답했다. 로봇이 어떻게 울먹이냐고? 분명 기자와 유저의 귀엔 그렇게 들렸을 것이다. '단 한 순간도, 너를 잊은 적이 없다'라는 콤의 대답은 기자의 눈물샘을 터트리고 말았다.
벙커 그림 앞에서 서로를 부둥켜안은 둘의 모습은 한 폭의 예술 작품이었다. 비록 딸은 니케가 됐지만, 세월이 흘러 아버지의 유산을 이어받았다. 100년의 세월을 버티며, 예술을 이어온 헤르민의 노력이 최고의 결실을 본 것이다. 이후 스토리에서 아트와 콤이 그저 행복한 이야기만 그려냈으면 좋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