바람의나라 PUBLISHER: 넥슨 코리아

[메카 밀.게.요] 일상어가 된 온라인 게임 용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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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캐리’라는 말을 알고 있나요? 요즘 어딜 가나 쉽게 들을 수 있는데요. 팀플레이가 요구되는 상황에서 주도적인 역할을 한 사람 혹은 그 행위를 뜻합니다. ‘오버워치’, ‘리그 오브 레전드’ 등 게임에서 팀을 승리로 이끄는 중요한 게이머의 플레이에 이런 말을 붙이죠. 그리고 부족한 팀원을 데리고 승리할 경우엔 ‘하드 캐리’라고 하며 대상의 업적을 기립니다.

반대로 팀워크를 망치고, 팀을 패배로 인도하는 인물은 ‘트롤’이라고 합니다. 다른 이가 화를 내도록 의도적으로 방해하는 행위 등을 뜻하죠. 이 용어의 어원은 낚시에 있다고 하지만, 역시 게임이나 온라인에서 자주 사용합니다. 그럼 캐리와 트롤러가 한팀이 된다면 어떻게 될까요? 보통 위대한 캐리도 트롤은 이기지 못한다고 합니다.

▲ ‘페이커’ 정도는 되야 진짜 캐리지! (출처: 게임메카)

앞서 말한 캐리와 트롤은 게임에서만 쓰는 단어가 아닙니다. 일상 생활에서도 자연스럽게 사용되고 있죠. 예를 들어 트롤은 조별 과제에 비협조적이거나 도움이 되지 않는 팀원에게도 붙일 수 있습니다. 이처럼 온라인이나 게임 속에서 사용되던 용어가 일상으로 넘어온 사례는 많은데요. 이제는 그렇게 특별한 일도 아니죠. 이번 시간엔 이런 온라인 용어에 관해 알아볼 예정입니다. 언제부터 사용되었고 어떤 특징이 있으며, 어떻게 일상어로까지 확산될 수 있었던 걸까요?

다양한 온라인 용어

온라인 용어의 역사는 천리안, 나우누리, 하이텔 등 PC 통신의 전성기까지 올라가야 합니다. 지금 보면 오그라드는 ‘방가방가’, ‘하이루’, ‘그럼 20000(이만)’ 등이 시초라고 할 수 있죠. 몇 가지 예와 특징을 볼까요?

유형1. 아무 의미 없어 – 아햏햏

‘아햏햏’이라는 요상한 은어가 널리 사용되던 시절이 있었습니다. 어떻게 발음해야 할 지부터 난감하고, 국어사전에도 등재되지 않은 미지의 단어죠. ‘무언가 말로 표현할 수 없는 것을 보았을 때 내는 즐거움의 감탄사’라고만 오픈 사전에 소개되어 있습니다. 유사한 은어로는 ‘뷁’ 등이 있는데요. 별 뜻은 없지만, 커뮤니티 내에서 약속된 언어이자 서로의 소속감을 드러낼 수 있다는 특징이 있습니다.


▲ 그는 역사상 가장 인상적인 2등이었습니다 (출처: 유튜브 채널 OGN)

유형2. 언어는 역사를 반영하지 – 콩라인

‘콩라인’이라는 웃픈 복합어도 있습니다. 1위 혹은 우승하지 못하고 만년 2위에 머무는 인물과 집단을 뜻하는 말인데요. 프로게이머였던 홍진호의 별명 ‘콩’에, 유사성으로 묶을 수 있는 사람들을 뜻하는 ‘라인’이 더해져 만들어진 단어입니다. 직역하면 ‘홍진호’와 같은 부류의 사람들이라고 풀이할 수 있는데요. 홍진호가 스타리그에서 준우승을 여러 번 하면서 생겨난 이 별명은 ‘만년 2인자’에게 붙여지는 하나의 칭호가 되었습니다. 더 나아가 ‘콩=2’로 인식되고 있죠. 한 인물의 정체성이 일반 명사가 된 재미있는 사례입니다.

유형3. 쓸 수 없다면 바꿔주겠어 – 흑우, 주작

‘흑우’라는 속어도 있습니다. ‘검은 소’를 뜻하는 한자어처럼 보이지만, 사실 ‘호구’를 변형해 표기한 단어죠. 이는 호구라는 말을 채팅창과 게시판에서 쓸 수 없게 되자 비슷한 단어로 그 뜻을 표현하면서 사용되었습니다. 조작이라는 말을 쓸 수 없어 ‘주작’이라 표현한 것도 유사한 사례죠. 게이머들이 금기에 도전하다 하나의 문화를 만들어낸 흥미로운 케이스입니다.


▲ 이제는 모르면 ‘아웃사이더’가 되는 신조어(출처: 유튜브 채널 딩고 무비 / dingo movie)

이렇게 온라인 용어는 유저의 소속감을 확고히 하고, 그들이 즐기는 문화와 욕구를 드러내는 등 다양한 요소를 함축하고 있습니다. 그런데 앞서 말한 것처럼 PC 통신 시절부터 이런 은어와 속어가 있었지만, 대중문화 속 일상어처럼 사용된 건 비교적 최근에야 가능했는데요. 과거엔 특정 계층과 집단이 사용하는 말로 인식되었고, 한때는 한글을 파괴하는 상스러운 언어라는 시선도 있었습니다. PC 통신과 게임 등이 음지의 문화로 여겨지던 시절이죠.

하지만, 최근엔 대중문화에서도 심심치 않게 온라인 용어와 신조어가 활용되고 있습니다. 기업의 마케팅에도 쓰이고, 이제 이런 용어를 잘 모르면 시대에 뒤처진다는 소리를 들을 수도 있죠. 어떤 일로 인해 인식이 바뀔 수 있었을까요? 여기엔 게임 문화를 정착시킨 온라인 게임과 이를 즐긴 밀레니얼 세대의 활약이 있었습니다.

바람의나라’가 문을 연 커뮤니티

온라인 게임은 다른 유저와 대화하고 소통할 수 있는 공간입니다. 문자를 통해 의사를 표현하고 정보를 공유하죠. 그리고 이제는 목소리로 현실처럼 대화를 나누기도 합니다. 지금은 당연해 보이는 이 기능이 과거의 게임엔 없었습니다. 필요성을 느끼지 못하던 시기가 있었죠. 그런데 게임과 무관해 보였던 이 기능이 게임 산업을 완전히 변화시켰습니다. 90년대 국내 게임 시장은 패키지 게임이 대세였는데요. 영웅전설, 파랜드 택택스, 창세기전 등 스토리가 탄탄했던 RPG가 인기였습니다. 그런데 ‘바람의나라’의 등장으로 게임 업계의 패러다임이 바뀌었죠.

▲ 만화 원작의 일러스트가 돋보이는 ‘바람의나라’

‘바람의나라’는 커뮤니티, 더 쉽게 말하면 유저간 소통을 추구한 최초의 그래픽 온라인 게임이었습니다. 싱글 플레이만 즐기던 게이머들이 바람의나라에서 다른 유저들과 채팅을 할 수 있었죠. 이전의 게임은 홀로 적을 처치하고, NPC와 프로그램에 입력된 똑같은 말을 들으며 퀘스트를 해결해야 했는데요. 바람의나라에서는 다른 유저들과 대화하고 함께 플레이하거나, 게임 외적인 이야기도 나눌 수 있었죠. 게임뿐만아니라 서로의 취향과 일상을 공유하는 등 온라인에서 인간관계를 추구할 수 있었습니다.

그렇게 닫힌 게임에서 열린 게임으로, 혼자 하던 게임에서 함께 하는 게임으로 변화가 시작되었습니다. 바람의나라가 온라인 게임의 싹을 틔운 덕분에 ‘리니지’, ‘드래곤 라자’, ‘뮤’ 등의 MMORPG가 시장을 휩쓸 수 있었죠. 그러면서 이 공간의 언어도 주목받기 시작했습니다. 특히, ‘쩔’, ‘젠’, ‘막타’, ‘길막’ 등의 용어는 바람의나라가 시초라고 알려져있죠.

과연 지금 게임을 즐기고 있는 유저들이 이런 용어를 잘 알고 있는지 궁금해졌는데요. 더불어 게임 속 용어를 현실에서 어떻게 쓰고 있고, 그에 관해 어떤 생각을 하고 있는지도 알고 싶었습니다. 가장 오래 서비스를 한 온라인 게임이라는 바람의나라 유저만큼 게임 용어의 변천사를 제대로 목격했을 유저도 없겠죠. 국민트리에서 그 유저들을 직접 만나봤습니다. (인터뷰이의 닉네임은 가독성을 위해 다음과 같이 줄였습니다. ‘다시쓰는시’: 다, ‘므엥므에엥’: 므, 살라딘공: 살)

▲ 2,000년대 초반부터 ‘바람의나라’를 즐긴 유저 ‘다시쓰는시’

Q. ‘쩔’과 ‘젠’이라는 말을 알고 있나요?

다: 네, 바람의나라 초창기 때 들어봤어요. 2003년 즈음이었죠. “넥슨은 다람쥐를 뿌려라!”라는 말도 그때 썼었습니다.

므: 초등학생 때 바람의나라 하다가 들어봤어요.

살: 알고 있죠! 그런데 그 말을 아직 써요? 초등학생 때 모뎀으로 게임하던 시절에 쓰던 말이에요.

Q. 현실에서 젠이나 쩔이라는 용어를 쓰거나 들어본 적이 있나요?

다: 젠이라는 말은 일상에서 쓸 일이 거의 없었고요. 쩔이라는 말은 다른 게임에서도 많이 썼죠. 고레벨인 친구들한테 자주 했던 말이에요.

므: 일상에서 써 본 적은 없어요. 상황이 애매하다고 해아하나? 쓰기 힘든 말이었죠.

살: 친구의 도움이 필요할 때 ‘쩔’이라는 말을 자주 썼어요. ‘도와줘’라는 말도 있지만 ‘쩔 좀 해줘’ 그러면 좀 덜 부담스러웠어요. 게임하던 친구들에게 썼는데, 왠지 우리끼리만 아는 용어를 말하는 것 같아 좋았죠.

▲ 한국 온라인 게임의 시초 ‘바람의나라’ (출처: 네이버캐스트 게임대백과)

Q. 혹시, 일상에서 자주 쓰는 게임 용어가 있나요?

다: ‘몸빵’이라는 용어가 있죠. 위험한 일이 있을 때 ‘먼저 가서 몸빵 좀 해달라’고 씁니다. 위험한 일을 먼저 해보라는 말이죠. (웃음)

므: 저는 트롤이라는 말을 자주 써요. 어떤 사건이 발생할 경우 피해를 주는 사람에게 그런 말을 쓰고는 하죠.

살: 친구 집을 ‘던전’이라고 불러요. 집을 하도 안 치워서 정말 괴물이 나올 거 같더라고요. 바퀴벌레나 개미가 나오면 ‘바퀴벌레 던전’, ‘개미 던전’이라 불렀어요. 그거 말고도 딜러와 서포터 등으로 친구들을 부르기도 하네요.

▲ 20년 동안 게임 문화의 변화를 목격한 ‘바람의나라'(출처: 바람의 나라 공식 홈페이지)

Q. 예전엔 온라인이나 게임 속 용어를 일상에서 쓰는 건 극히 드물었지만, 요즘은 다양한 대중 문화에서 활용하고 있는 것 같습니다. 어떻게 게임 용어가 이렇게 일상적으로 퍼질 수 있었을까요?

다: 현재 남녀노소를 가리지 않고 모두 게임을 즐기고 있어요. 스마트폰 덕분에 접근성이 더 나아졌죠. 게임이라는 문화가 친숙해졌고, 그래서 그 언어가 일상으로 자연스럽게 퍼진 게 아닐까 생각해요. 게임의 대중성이 가장 큰 역할을 한 것 같네요.

므: 제가 어렸을 때만 해도 PC 게임이 주류이지는 않았어요. 다른 놀 것들이 많았죠. 그런데 요즘 친구들은 학원에 다니느라 바쁘고, 바깥 활동도 잘 못 하다보니 게임을 더 많이 즐기는 거 같아요. 그 친구들에게 게임은 영향력이 큰 여가 생활이자 하나의 문화가 된 거죠. 게임이 주류 문화가 된 게 언어에도 영향을 준 것 같습니다.

살: 게임에 대한 인식이 훨씬 좋아진 게 크다고 생각해요. 과거엔 게임을 좋지 않게 바라보다 보니, 그곳에서 쓰던 용어도 그런 취급을 받았죠. 이제는 게임이 누구나 즐기는 여가이자 스포츠로까지 생각될 정도로 인식이 좋아졌잖아요. 게임 문화의 발전이 자연스럽게 게임 용어도 긍정적으로 바라보게 해준 것 같네요.

▲ 하위문화에서 주류 문화가 된 ‘게임’의 열기를 볼 수 있는 ‘네코제’ (출처: 게임메카)

주류문화가 된 게임의 영향력

앞서 말했듯 과거 인터넷 커뮤니티와 그곳의 언어는 주류 문화와 거리가 있었습니다. 마이너하고 소수의 마니아가 즐기는 것으로 인식되었죠. 게임도 유사한 처지였습니다. 이전부터 폭력과 중독성, 폐인 등의 이미지가 늘 따라다녔죠. 그래서 게임은 꽤 오랫동안 하위문화나 반사회적인 문화로 인식되었습니다.

그랬던 게임이 스포츠가 되었고 공개된 공간에서 즐기는 여가로 인정받게 되었는데, 여기엔 밀레니얼 게이머의 역할이 중요했습니다. ‘네코제’ 등을 통해 게임은 모두가 즐길 수 있고, 게이머의 재능을 발휘할 수 있는 긍정적인 문화일 수 있다는 걸 증명했죠. 그렇게 온라인 커뮤니티와 게임에 갇혀있던 언어가 밖으로 뛰쳐나올 수 있는 계기도 마련했습니다. 덕분에 우리의 일상 생활 속에서 캐리, 트롤 같은 단어가 쉽게 쓰이게 된 거죠.

▲ 온라인 게임에서 시작한 ‘길막’ (출처: 바람의나라 공식 홈페이지)


‘문 앞에서 길막하지 말고 좀 비켜 봐!’

‘어제 네가 준 초콜렛 먹고 버프 받아서 시험 잘 봤어’

‘어제 숙제 다 했는데, 또 퀘스트 받았어’

‘시험 기간 동안 불태웠으니까 쿨타임 좀 가지자’

게임에서 사용되던 길막, 버프, 퀘스트, 쿨타임 등은 이제 주변에서 자주 들을 수 있습니다. 대중화된 게임문화 속에서 밀레니얼 세대의 게이머는 현실과 게임의 벽을 허물고 있죠. 그들은 게임을 현실의 공론장처럼 활용하고, 현실은 게임처럼 생각하며 재미를 추구합니다. 그 과정에서 게임을 양분으로 삼아 새로운 문화를 만드는 데까지 성공했죠. 나아가 다른 대중문화를 주도하고 있습니다.

▲ 과거 ‘상상플러스’의 역할을 해줄 수 있는 ‘게임’ (출처: 유튜브 채널 KBS 안테나)

게임 문화가 음지에서 양지로 나가는 데 큰 역할을 했던 바람의나라 등의 1세대 온라인 게임은 이제 어떤 역할을 할 수 있을까요. 과거 KBS엔 ‘상상플러스’라는 프로그램이 있었습니다. 10대가 모르는 어른의 말, 어른들이 모르는 10대의 말을 소재로 한 퀴즈를 볼 수 있던 프로그램이죠. 재미있는 예능이면서 연령 별로 몰랐던 언어문화를 알게 한 유익함도 있었습니다.

이런 역할을 1세대 온라인 게임이 해줄 수 있습니다. 가장 오래 서비스된 온라인 게임으로서 바람의나라는 10대부터 40대까지 여러 세대가 모여 있는 공간이죠. 이들이 게임을 통해 소통하면서 자연스레 서로의 간극을 줄일 수 있을 겁니다. 서로의 언어를 배우고, 그걸 조합해서 또 다른 언어도 만들어 갈 수 있겠죠. 그렇게 새로운 문화가 탄생하는 공간으로서 게임의 역할을 기대해봅니다.

코너 속의 코너, ANOTHER SAY

‘ANOTHER SAY’는 같은 게임을 즐긴 분들의 이야기를 남긴 코너입니다. 하고 싶은 말, 추억, 고백, 친구 찾기 등 자유롭게 여러분의 목소리를 들려주세요.

= 넥슨은 다람쥐를 뿌려라! 답답했지만, 그 시대 게임이 주는 향수가 있어

= 백열장 때문에 키보드 미친 듯 때렸던 거 생각난다 ㅋㅋㅋ

= 유료 서비스를 할 수가 없어서 다람쥐랑 토끼만 엄청 잡았지

= 지금은 안 믿는 애들이 있는데, 그 당시에 바람하면 전화를 끊어야 했다;;

= 고렙들 졸졸 따라다니면서 쩔 많이 받았지… 지금은 버스탄다 그러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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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민트리의 ‘메카 밀.게.요’ 코너에서는 다양하고 독특한 콘텐츠의 게임, 활동, 인터뷰이를 찾고 있습니다.

– 남심&여심 모두 저격하는 ‘귀욤뽀짝 캐릭터’ 게임
– 조카, 삼촌 모두 할 수 있는 캐주얼함의 매력, ‘EASY 난이도’ 게임
– 게임을 하려면 이겨야지! 무쌍 찍을 수 있는 ‘공격형 여포’ 게임
– 웹드라마보다 재미있는 이야기, ‘하이퀄리티 스토리’ 게임
– 아직 살아 있니? 어린 시절 즐겼던 ‘추억의 고전’ 게임

이외에도 다양한 사례를 찾고 있으니, 댓글과 메일을 통해 제보 및 참여를 부탁합니다.

– e메일: content@gamemeca.com

강해인 기자 모든 게임에 흥미가 있습니다. 그렇다고 모든 게임을 다 좋아하지는 않습니다. 재미있는 게임을 많은 분들과 공유하고 싶습니다. 좋은 게임에 답을 할 수 있는 기자가 되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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